책 소개
다음 읽을 책을 고르던 내 눈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왔다. 말콤 글래드웰... 말콤 글래드웰은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다. 티핑 포인트? 내가 말콤 글래드웰 책 중에 아직 안 읽은 게 있던가? 2020년에 나온 책이면 그럴 수도 있겠군. (나는 지난 몇 년간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서재에서 말콤 글래드웰 책을 모아둔 곳을 보니 티핑 포인트라는 책은 없었다. 게다가 표지의 '모든 신드롬은 놀랍도록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었다. 왜 어떤 것은 뜨고 어떤 것은 사라지는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세상을 뒤흔드는 대유행의 법칙'이라는 문구가 날 자극했다. 나는 표지, 작가 프로필 정도만 보고 책을 고른다. 그 흔한 목차도 읽지 않는다. 하지만 티핑 포인트를 집어 들고 4~5페이지 정도를 읽고 난 뒤, 아... 읽었던 책이구나... 알 수 있었다. (자주 있는 경험이다.) 나는 책을 빌려서 보지 않기 때문에 서재에 없다면 안 읽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근데 이 책은 없었고, 2020년 발행이라고 쓰여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서재에 없던 책, 그리고 출판사에서 표지만 바꿔서 다시 내놓은 책(책 디자인이 20년 전 책으로 의심하기엔 너무 트렌디함)이었다.
뭐... 읽었던 책 잃어버리면 다시 사서 서재에 채워 넣는 편이라, 한 권 더 산 건 아깝지 않다. 그리고 궁금했다. 10년이 넘게 지난 뒤 다시 읽는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어떨까? 처음 읽었던 그때의 나는 클라이언트사를 위해 일했던 마케터였고, 지금의 나는 내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마케터와 사업가 사이에는 작지 않은 괴리가 있다. 궁금해졌다. 10여 년 만에 집어 든 책의 서두는 다시 읽고 싶은 맘이 들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이라면 한 번 더 읽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최근에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타인의 해석은 현재의 말콤 글래드웰이 얼마나 광범위한 지식 분야에서 압도적인 작가가 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책. 추천한다.
티핑 포인트는 마케팅을 하는 사람, 아니면 나처럼 자기 브랜드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본 필독서라 부를만하다. 본문에서도 언급이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은 이거다. 마케터로서, 사업가로서(아니면 부모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두 가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왜 어떤 아이디어나 행동들은 유행을 타고 주류가 되는 반면, 다른 건 그렇게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이유를 안다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어떠한 유행을 일으키고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케터로서 사업가로서 혹하게 하는 질문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유행을 타고 주류가 되는 아이디어들에는 아주 사소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 사소한 변화, 계기, 지점이 티핑 포인트다. 티핑 포인트를 만들어내기 위한, 티핑포인트가 발생한 수많은 사건에는 세 가지 법칙이 있다. 소수의 법칙, 고착성의 법칙, 상황의 힘 법칙이다.
줄거리
첫째, 소수의 법칙은 유행을 일으키고 어떠한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거대한 집단이 아니라 아주 소수의 사람과 그룹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 아닌 예외적인 사람 중 한 명이 트렌드를 알아채고 사회적 관계와 에너지와 열정, 개성을 통해 입소문을 퍼뜨린다. 세부적으로는 (1)수많은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커넥터 - 마당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2)제품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가진 메이븐 - 마니아, 덕후가 이에 해당한다. 메이븐들은 제품에 대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주변에 설명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3)적극적인 언행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세일즈맨 - 입소문의 마지막 단계로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전달한다.
소수의 법칙에는 깊이 공감한다. 다만, 말콤 글래드웰이 이 같은 개념을 20년 전에 발견하고 이렇게나 장황하게 서술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도, 현재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자리매김했다. 인플루언서들은 커넥터이자 메이븐이자 세일즈맨이다. 내 서재만 잠깐 훑어보아도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이 들어간 마케팅 도서가 3권이나 된다. 현시점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참고로 2년 전 내가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를 유명 인플루언서가 SNS에서 극찬했다. 광고료를 준 것도 아니고 인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운이 좋게도 우리 제품이 그 인플루언서의 눈에 띄면서 '진심 어린' 칭찬과 추천을 올렸다. 그 짧은 영상으로 우리 브랜드는 단 한 개의 제품이 4억 원어치 판매됐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을 토대로 작정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광고료를 주고 우리 제품을 소개)에 힘을 쏟은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때 같은 효과를 누린 적이 없다.
바로 여기에서 고착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고착성의 법칙은 전염성이 강한 메시지를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제시하고 구성하는 방식에 아주 작은 변화만 줘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임팩트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위의 (내가 경험한) 사례에서 최초 내 브랜드를 소개한 인플루언서는 본인이 발견한 브랜드라는 희소성과, 자신이 실제로 상당히 만족하는 제품이라는 확신이 더해져 고착성이 강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입에 담았다. 그것이 소비자로 하여금 고가의 제품에도 쉽게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내 브랜드 제품은 평균이 20만 원이다.) 그 이후 의도적으로 진행한 인플루언서 광고에서는 이런 강력한 메시지를 담지 못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들이 그러기를 꺼려 하는데, 그것은 광고 협찬을 받은 입장에서는 본인이 메이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넥터와 세일즈맨보다 메이븐의 존재가 가장 강력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아이디어의 내재적 품질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러 사례들 중 전하는 내용을 실질적으로 바꾼 경우는 없다. 반감과 수용 사이의 경계선, 다시 말해 일순간에 폭발적으로 번진 유행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경계선은 때때로 보기보다 훨씬 더 좁다. 고착성이 주는 교훈은 적절한 상황에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도록 정보를 포장하는 것이다.
마지막 상황의 힘 법칙은 위의 두 가지보다 쉽다. 깨진 유리창 이론, 그러니까 건물의 창문이 깨진 채로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그 건물이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곧 더 많은 창문이 깨지고 더 나아가 어떤 짓을 해도 되는 건물로 인식된다는 이론을 예로 든다. 주변 환경의 아주 세부적인 부분들로 인해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고, 반대로 세부적인 부분을 손봄으로써 유행이 뒤바뀌고 급변할 수 있다. 즉 행동들이 사회적 상황과 함수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라는 강력한 요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구분 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의 내제적인 성향을 압도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특정 상황들이 있다. 그것이 상황의 법칙이다. 저자는 상황의 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은 사례를 제시한다. 그냥 쉽고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내용들.
총평
티핑 포인트는 말콤 글래드웰의 책답게 실용적이고 쉽다. 어려운 지식들도 쉽게 풀어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인지라 마케팅에 입문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단순 관심을 가지고 읽기에도 적합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첫 번째 저서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최근 타인의 해석에서 느낀 것처럼 세련되거나 간결하지는 않다. 제시한 사례들이 큰 주제를 벗어나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이유로 큰 주제에 집중되기 보다 약간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한참을 읽다가, 아... 이걸 말하고 있는 거지?하며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풀어낸 대목들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쉽고 편한 마케팅 도서라는 점은 인정.
티핑 포인트에서 설명한 다양한 법칙들을 지금 시대에 맞게 좀 더 깊이 있게 읽어보고 싶다면 이어서 컨테이저스라는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컨테이저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케팅 도서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어떤 마케팅을 펼쳐가야 할지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책이다. 그리고 어제 글을 올렸던 '캐털리스트'의 저자 조나 버거가 쓴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다양한 작가의 책을 읽어보는 걸 권하지만,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말콤 글레드웰과 조나 버거의 책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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