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토레 렌베르그가 지은 '톨락의 아내'라는 소설이다.(원제: Tollak til Ingeborg)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는 것인데 표지부터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다. 노르웨이에서 '서점연합상'을 수상했고 (상의 권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 외에 다양한 매체로부터 극찬을 받은 책이었기에 흥미로웠다. 노르웨이에서는 출간 당시 불편하고 강렬하지만 상당한 재능을 가진 스토리텔러의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평가 그대로 책 전반에는 불편한 기운이 서려 있다. 소설은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어떤 소설은 주인공에 이입하여 그의 심리를 경험하고 공감하는 반면, 어떤 소설은 시점에 상관없이 주인공의 심리 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내맡겨지는 소설이 있다. 톨락의 아내는 후자에 가까운 편으로 주인공인 톨락의 심리에 대해서도 묘사가 꽤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야기의 큰 줄기에 모든 시선이 맞춰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래의 총평에서도 적어놓았지만) 주인공 심리의 흐름과 묘사에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거의 없다. 그것이 서스펜스적인 이 소설의 무드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책을 읽는 내내 어떠한 분위기에 휩쓸리게 만드는 요소다. 조금 색다른 전개와 주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노르웨이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어두침침한 소설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여러모로 가볍게 집어들기 좋은 소설이다.
줄거리
톨락의 묘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입술 사이로 흐르는 피, 빠져 버린 치아. 그는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얼마 전 사랑하는 아내 잉에보르그를 잃었다. 그보다 먼저 아주 오래된 목재소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도태된다. 시내에 더 쉽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가구점에 밀려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목재소를 인수하겠다는 제안, 시내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는 아내의 제안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 묵묵하게(단절) 자신만의 삶을 산다. 두 자녀는 독립해서 살고 있는데 모두 톨락과 사이가 좋지 않다. 아들 얀 비다르는 간혹 아버지인 톨락을 찾지만 그의 아내(톨락의 며느리)는 톨락의 묘사대로라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혐오하는 여성이다. 사랑하는 딸 힐레비는 톨락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사를 써대고, 지금은 톨락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표시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톨락은 잉에보르그가 함께 하던 시절, 그리고 두 자녀가 함께 살던 시절부터 키워온 (생모가 양육을 포기한 이웃) 오도와 단둘만 남게 된다. 기괴한 성격의 그는 세상과의 모든 것을 단절한 채, 오직 오도를 돌보는 일에만 몰입하게 되는데...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두 자녀들을 집으로 불러 미뤄뒀던 고백을 하기로 결심한다. 고립된 삶, 파괴적인 행동들로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톨락의 비밀을 (본인이 1인칭 시점으로) 하나씩 벗겨내는 이야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누구보다 외향적이던 아내 잉에보르그의 성격과 대비되어 그의 어둡고 지저분한 행태가 부각된다.
총평
반전이 꽤나 이어지는 이야기라, 위의 줄거리는 핵심을 최대한 피해서 적었다. 처음 읽어보는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임에도,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 문체가 어렵지 않았다. (간혹 이름을 익히는 데만도 몇십 장이 필요한 외국 소설이 있다.) 문체도 간결하고 전개가 상당히 빠른 편이라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편이다. 그리고 상당히 독특하다. '노르웨이 최고 스토리텔러의 불편하며 강렬한 소설'이라는 책 소개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정말 불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톨락의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작가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내 추측에 톨락은 정실질환자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작가가 그렇게 설정한 것이든 아니든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주인공의 서술에, 생각에, 행동에 공감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더 섬뜩한 묘사들이다. 보통 사람이 공감하기 어려운 본인의 생각을 지극히 합리적인 것처럼 묘사하는 톨락의 말들이 가득하다. 스릴러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혼란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점의 전환이 빠르고 조금 산만하지만 그 또한 전체 이야기의 분위기와 잘 닮아 있다. 260페이지 정도지만 책의 여백이 많아(여백도 계획된 것?) 2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 몰입도가 괜찮다. 상당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소파에 기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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