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마일리스 드 케랑갈이 지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원제: The Heart)를 읽었다. 다음 책을 고르던 중 빌 게이츠의 추천 도서가 눈에 띄었다. 유명인들의 추천사를 참고하는 편은 아니지만 빌 게이츠 추천 책은 좋았던 경험이 많아서 눈여겨보게 된다. 빌 게이츠 추천 태그(YES24에서 모아서 볼 수 있다) 중에 이례적으로 소설이 있었다. 인상적인 표지 디자인과 제목에서부터 흥미가 생겼고 몇몇 추천사와 후기를 보고는 설레기까지 했다. 그리고 작가는 <시적>이라는 말을 써보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는 빌 게이츠의 추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독특한 형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런 면에서 마일리스 드 케랑갈은 천상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나의 경우엔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읽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와는 너무 안 맞는다는 커다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읽기가 좀 어려운 소설이다. 음... 옮긴이의 말에서 그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처음엔 옮긴이의 문제인가 싶었다.) 옮긴이는 '이번 번역 작업에서는 즐거움보다는 고달픔이 훨씬 더 잦게 찾아왔다. 숨이 가빠 올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과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문장들의 어지러운 갈마듦, 현학적이고 전문적인 어휘들과 일상어 혹은 비속어들의 혼재, 문장의 흐름을 툭툭 끊어 놓으며 복잡하게 가지쳐 나가는 무수한 연상들의 난입......'이라고 묘사했다. (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가 거의 차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열린책들 출판사의 양장본이다. 아주 맘에 드는 만듦새. 아래는 짧게 적은 줄거리.
줄거리
서핑을 좋아하는 소년인 시몽 랭브르는 함께 서핑에 미쳐 있는 친구 크리스토프 알바, 조앙 로셰와 함께 이날도 서핑을 즐긴다. 그리고 서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른 새벽, 그들이 타고 있던 소형 트럭은 사고를 당하고 만다. 세 명 중 유일하게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채 앞 좌석 가운데 앉아 있던 시몬 랭브르는 사고의 충격으로 머리를 전면 유리창에 부딪히고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이내 뇌사 판정을 받게 된다. 시몽이 뇌에 입은 손상은 매우 심각해서 돌이킬 수 없다. 시몽의 부모 숀과 마리안은 평소와 다름없게 누워있는 아들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담당 의사 레볼을 통해 장기 이식의 가능성에 대해 듣게 된다. 그리고 장기를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뇌사 판정, 그리고 장기 이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기 이식이라는 소재를 이제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좀 다르다. 단순히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 이식 수술이라는 엄숙한 주제를 두고 그 과정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입장 차이, 그러니까 각자의 위치에서 시몽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이런 시도가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자식의 이식 수술을 결정해야 하는 부모, 이걸 권해야 하는 의사, 얽혀있는 이해 당사자들의 심리.
총평
이 책을 읽는 동안 숱하게 피로감을 느꼈다. 우선 각 이해 당사자의 입장과 심리를 옴니버스 형태로 이어간 건 아주 좋은 시도였지만 과하다. 매우 과하다. 시몽의 이야기와 시몽의 부모, 동생, 여자친구, 친구들 이야기... 그래 의료진 이야기까지도 아주 좋다. 근데 로즈가 어떤 여자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고 그 긴박한 24시간의 묘사에 그런 곁가지 등장인물들이 우수수 쏟아진 것은 호흡조절 보다 산만함에 가까웠다. 산만한 스토리에 산만한 문체까지 더해져 전문서적을 읽을 때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글에서 작가가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소설은 모든 순간, 모든 문장에서 작가가 드러난다.
물론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군더더기가 매우 많은 글이므로 혹시 이 책에 흥미를 느낀다면 YES24에서 미리보기를 무려 25페이지나 제공하고 있으니, 먼저 확인하고 선택하는 걸 추천한다. (문체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와 이야기의 흐름일 수 있다.) 한 가지 의외의 소득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의 문해력과 속독력이 몇 단계 성장한 것 같다. 이 뒤에 선택한 책들은 하나같이 초등학교 교과서처럼 느껴질 만큼 머리에 쏙쏙 박히는 중이며 기분 같아서는 하루에 서너 권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기 능력을 높이기에 아주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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